지난 글에서 우리는 벤치마크란 무엇이고 어떻게 탄생한 개념인지, 목표 달성을 도와주는 기준점으로 정의되는 KPI와는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배웠습니다. 벤치마크는 원래 토지를 측량할 때 참고하기 위해 박아두는 ‘측량 점’을 뜻하는 말이었지만, 침체에 빠진 제록스사가 다른 기업들의 뛰어난 점을 적극적으로 배우고 응용하는 경영 쇄신을 통해 부활하면서 경영 기법을 일컫는 용어로 널리 쓰이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기업이나 조직이 뛰어난 경쟁사나 다른 업계를 목표 달성의 기준점으로 삼는 경영 기법’인 벤치마크를 조직 경영에 적용하기 위해, 이번 글에서는 벤치마크가 어떤 유형으로 나뉘고, 유형마다 어떤 예시와 장단점이 있는지 알아봅시다.
벤치마크의 유형 1 - 무엇을 벤치마크할까?
- 프로세스 벤치마킹
프로세스 벤치마킹은 자사와 비슷한 업무를 수행하거나 사업을 운영하는 다른 기업이나 조직을 보고, 관련 절차나 과정을 배우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제조 회사라면 공급 업체에 원자재를 발주하고 대금을 지급하는 절차, 공장에서 제품을 검수하는 절차, 유통업체에 공급하는 절차를 벤치마킹으로 배울 수 있습니다. 소비재를 파는 매장이라면 상품을 입고하는 절차, 재고를 파악하고 진열하는 절차, 고객을 응대하는 절차, 제품 교환이나 환불 건을 처리하는 절차 등이 있겠지요. 지난 글에 소개된 제록스의 벤치마킹 사례에서, 제록스는 엘엘빈이라는 의류 회사와 협력 관계를 맺어 그들의 효율적인 유통 방식을 배웠는데요, 이 역시 좋은 프로세스 벤치마킹의 예입니다. 프로세스 벤치마킹은 생산성 향상, 비용 절감, 매출 증대 같은 직접적인 결과로 이어져, 비교적 단기간에 재정적인 성과를 드러냅니다. - 성과 벤치마킹
자사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타사와 비교하는 벤치마킹 방식입니다. 주로 가격, 기술 사양, 품질, 제품의 내구성이나 안정성, 서비스 속도 같은 요소를 분석해 비교합니다. 그중에서도 제품 분석은 주로 역설계를 통해 이뤄집니다. 역설계란 완제품을 분해해서, 해당 제품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설계도 없이 추적하는 기법입니다. 다시 제록스의 사례로 돌아가면, 엔지니어들이 복사기 품질 개선을 위해 캐논이나 샤프 등의 경쟁사에서 출시한 복사기를 분해해 부품을 하나하나 연구한 것이 바로 역설계를 통한 성과 벤치마킹에 해당합니다.
한편, 성과 벤치마킹은 금융 업계에서도 널리 사용됩니다. 주식시장에는 시장의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작성하는 여러 지수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종합주가지수와 코스닥 지수가 있고, 미국에는 다우존스와 나스닥 지수가 있지요. 이 지수들은 펀드 매니저들의 자금 운용 능력을 평가하는 척도로 활용됩니다. 어떤 펀드매니저가 5%라는 수익률을 기록했으나 같은 시기에 종합주가지수 상승률이 20%였다면 그 매니저는 다른 사람들이 큰 수익을 올리는 동안 형편없는 성적을 낸 격이 됩니다. 그러나 종합주가지수가 마이너스 10%를 기록한 시기에 똑같이 수익률 5%를 달성했다면, 그는 어려운 시기를 훌륭하게 방어했다고 평가받을 수 있죠(성과 벤치마킹의 예로 금융투자 수익률을 벤치마크와 비교한 그래프를 보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 전략적 벤치마킹
전략적 벤치마킹은 회사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업계나 사업 특성에 구애받지 않고 뛰어난 성과를 보이거나 특별한 기술을 지닌 다양한 기업에서 성공 비결을 구하는 활동입니다. 프로세스나 성과 벤치마킹이 ‘나무’를 보살피는 지엽적인 개선 활동이라면, 전략적 벤치마킹은 숲 전체를 바라보는 본질적인 경영 활동입니다. 다만 큰 그림을 그리는 만큼 프로세스 벤치마킹처럼 성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기는 어렵습니다.
벤치마크의 유형 2 – 어떻게 벤치마크할까?
- 내부 벤치마킹
내부 벤치마킹이란 한 조직에 속한 부서나 구성원들이 비슷하게 수행하는 업무 절차들을 비교해 가장 효과적인 업무 처리 방식을 찾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세계 각국에 매장을 둔 가전 브랜드에서는 매장마다 고객 불만을 훌륭하게 처리한 사례를 공유하여 까다로운 상황에 대처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벤치마킹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조직 내부에서 이뤄지는 활동이므로 비교적 쉽고, 빠르고, 저렴하게 실행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모두 같은 조직에 속해 있기 때문에 기밀 유출을 염려하지 않고 자유롭게 정보를 나눌 수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부 벤치마킹을 너무 많이 수행하면 내부에서 경쟁이 심해지거나, 서로 같은 방식을 배운 결과 차별성이 사라질 수 있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내부 벤치마킹이 활발히 이뤄지는 사례가 있는데요, 요즘 국민적 관심이 뜨거운 청와대의 국민청원(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 게시판입니다. 미국에서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만들었던 위 더 피플(https://petitions.whitehouse.gov/)이라는 플랫폼을 문재인 정부가 벤치마킹한 것이 그 시작이었는데요, 최근에는 인천시(http://cool.incheon.go.kr/index.do), 서울시 강남구(http://www.gangnam.go.kr/petition/list.do)가 청와대를 벤치마킹해 온라인 청원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한국 정부가 미국 정부를 본뜬 ‘외부’ 벤치마킹이 국내 공공기관의 ‘내부’ 벤치마킹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 경쟁 벤치마킹
경쟁 벤치마킹은 같은 업계의 경쟁사를 벤치마킹하는 활동입니다. 같은 사업을 하는 만큼 비슷한 업무나 활동이 많기 때문에 서로 비교하기 수월하고, 목표를 계획하고 달성하는 데 있어 유용한 정보와 식견을 많이 얻을 수 있습니다. 같은 업계에 있으면 비슷한 규제를 받기 때문에 다른 업계에서는 찾기 힘든 특수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구하거나, 이른바 ‘동병상련’을 느끼며 규제를 극복할 실질적 해결책을 함께 모색하기에 좋습니다. 예를 들면, 최근 세계적으로 동물의 생명권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모피나 가죽으로 옷과 가방을 만드는 회사에 대한 사회적 비난의 목소리와 법적 규제가 거세지고 있습니다. 다른 업계에서 비슷한 예를 찾기 힘든 특수한 문제이지요. 그러므로 멸종위기 종 보호와 동물 사육 환경 개선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일지, 세계 각국의 규제를 어떻게 준수할지, 모피나 가죽 사용을 반대하는 여론에 어떻게 대응할지 배우려면 같은 업계 경쟁사의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하지만 경쟁 벤치마킹에서 유의할 점은, 상대가 경쟁사인 만큼 우리 기업의 성장에 꼭 필요한 핵심 정보를 제공 받기 어렵습니다. 경쟁사 입장에서는 호랑이 새끼를 키우는 격이니까요. 따라서 경쟁 벤치마킹은 이미 시장에 출시된 제품이나 서비스를 분석하는 성과 벤치마킹에 머무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경쟁 벤치마킹으로 경쟁사를 따라잡을 수는 있겠지만, 이들을 뛰어넘을 전략은 궁극적으로 기업 내부에서 나와야 한다는 점도 기억해야 합니다. - 기능 벤치마킹
기능 벤치마킹은 기업 내 영업, 홍보, 재무, 인사 등 부서별 업무나 식료품점의 매대 재고 회전율, 재고 수량 조사, 점원 교육과 같은 특정한 기능을 다른 업계의 기업과 비교하는 것입니다. 조직 안에서 개선하고 싶은 업무나 기능을 가장 잘 수행하고 있는 타 기업을 업계에 구애받지 않고 찾아서 배우는 것이지요. 가령 현대카드는 신용카드와 할부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이지만, 독특한 ‘디자인 경영’으로 많은 기업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이때 ‘디자인 경영’은 신용카드 혜택 구성, 신규 가입 고객 유치 비결 등 신용카드 사업에 국한된 기능이 아니기 때문에 현대카드와 다른 업종의 기업에서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는 벤치마킹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 포괄적 벤치마킹
포괄적 벤치마킹은 경쟁 벤치마킹이나 기능 벤치마킹보다 추상적인 개념으로, 언뜻 보면 상관관계가 없어 보이는 영역에서 사업 운영 프로세스나 업무 처리 방식을 개선할 방안을 배우는 것입니다. 일례로, 끊임없이 새로운 디자인을 내놓으며 유행에 빠르게 대응해야 하는 SPA(유통제조 일괄) 패션 브랜드는 상품이 쉽게 상해서 금방금방 팔아야만 하는 생선 가게나 꽃집의 재고 관리 방식을 통해 재고 회전율을 높일 방안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생선이나 꽃은 패션과 전혀 관련 없는 분야이지만, 재고를 빨리 처리하는 방면으로는 업계의 차이를 초월하는 일가견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포괄적 벤치마킹은 기존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수준을 넘어 기업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키기에 가장 좋은 벤치마킹 유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벤치마크의 대상이나 접근 방식에 따른 여러 유형 및 각각의 예시와 장단점을 알아보았습니다. 조직을 지엽적으로 개선하는 벤치마킹도 있고, 큰 그림을 그리며 근본적인 혁신을 추구하는 벤치마킹도 있었는데요, 무조건 크고 획기적인 것만이 좋은 벤치마킹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현재 조직의 상황에 가장 잘 맞는 벤치마킹 유형을 찾는 것이야말로 좋은 벤치마킹을 위한 출발점이겠지요. 다음 글에서는 다시 KPI로 돌아가, KPI를 개발하고 작성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소개합니다.